예카테리나 2세, 엘리자베스 1세, 카르티니, 테오도라, 측천무후, 서태후, 메리여왕... 

더 기억해내고 싶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세계사를 공부하던 재수생 시절, 역사를 다채롭게 장식한 왕들의 업적을 외우다 문득 기이함을 느꼈다. '여자는 몇 명 있었지?' 공부도 제쳐두고 참고서와 필기노트를 뒤적거리며 역사속에 남은 여성들의 이름을 찾았다. 10명 남짓 되었다.

10명의 이름을 이면지 여백에 나열해 적었다. 그 때 느꼈던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씁쓸함'이다. 한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익숙한 여성들의 잔상이 머릿속에서 차례로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어떻게 10명밖에 없을 수 있지? 이 날 처음으로 나는 역사속에서 여성이 어떤 위치에 서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수많은 여성들이 왜 역사속에서 잊혀져야만 했는가 곰곰이 생각했다. 과거에 여자는 위대한 사상을 펼치고 왕이 될 자질이 부족했던 걸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모든 여성은 우둔하기 때문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대답이 그녀들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라면 비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누군가는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발전해가는 현재의 역사를 보라고 말하지도 모른다. 여성의 삶은 많이 나아졌고, 나아져가고 있다고. 나도 그것에 작은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82년생 김지영씨의 삶속에서 나는 나의 삶의 파편을 발견한다. 때로는 우리 엄마의 삶의 파편을, 때로는 나의 친구의 삶의 파편을 마주한다. 그것들을 조각 조각 모으면 김지영씨의 삶 하나가 완성된다. 완성된 그녀의 삶은 상처투성이다. 간간히 작은 위로처럼 후시딘이 발라져있지만 흉터를 가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또 다른 자아가 되어서야만 자신의 상처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그녀의 상황은 현재 여성들이 겪는 현실을 반영한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프레임에 싸여져 있다. 여성들의 본질, 그녀들이 '인간'이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 본질은 프레임에 가려져 그녀들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의미를 망각하고 프레임으로만 남게 만들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 프레임 속에 갇힌 여성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며 문제 해결을 회피하기도 했다. 여자는 얌전해야 하고, 드세면 안된다. 몸을 함부로 드러내서도 안되고, 혹시 모르니 모르는 사람과 말을 함부로 섞어서도 안된다. 여성들이 해서는 안되고, 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늘어날 수록 사회가 잘못한 것들은 온전히 여성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김지영씨를 아프게 만든 것은 바로 이 프레임이다. 그녀를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고 '여자'로만 바라보는 그 시선말이다. '여자'로서의 양식을 이미 정해놓고 한 인간에게 '여자'로써 행동할 것을 강요하는 그 프레임은 그녀의 영혼을 말라 죽게 만든 것이다.

나 역시 그 프레임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프레임 속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프레임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02년생 김지영, 12년생 김지영이 나처럼 82년생 김지영 씨의 아픔에 공감한다면, 그것만큼 슬픈일은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82년생 김지영씨의 상황에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것을 막연한 확신이 든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그들을 괴롭히는 프레임이 사실 어떤 근본도 없는 사슬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가만히 고민하면서 내 주위를 둘러본다. 상처투성이 삶에 무뎌져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지영씨'들이 보인다.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